안전한 객실내에서
승객 여러분께 잠시 양해말씀 드립니다. 본 열차 신호대기 관계로 잠시 정차중입니다.
승객 여러분께서는 안전한 객실내에서 잠시만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.
열차 이용에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.
마냥 신기한 눈으로 차창 밖을 보며 외갓집을 향해 가던 그 옛날의 통일호 객실에서 흘러 나오던 멋진 목소리를 가진 기관사 아저씨의 안내방송은 왠일인지 아직까지도 머릿 속에 또렷하게 남아있다. 사방을 사람으로 포박당한 아침의 강남방향 2호선 지옥철에서도 어쩐지 저 안내방송의 멘트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른게 없는 것 같다.
그런데 어쩐지 나는 저 멘트가 흘러 나오는 중간의 '안전한 객실내에서' 라는 구절이 너무나 특별하게 느껴진다. 사실 열차가 가다가 잠깐 서 있는 대수롭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'안전한 객실내에서' 기다리라고 하면 정말 객실이 안전한 것 같은 느낌을 받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같은 것이다. 그 때문일까. (무궁화호부터는 불가능해져버린) 달리는 열차의 출입문 난간 손잡이에 의지해 몸을 내미는 위험한 행위를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은.
여하튼 기관사의 '안전한 객실' 강조멘트는 적어도 내게는 꽤나 큰 효과가 있는 것 같다. 멘트를 듣는 것과 동시에 '아! 나는 지금 참 안전한 공간에 있구나' 하고 새삼스레 자각하게 된다. 그러면 얘기한대로 어쩐지 조금은 편안해 지는 것 같다. 굳이 용어를 하나 만들자면, '화자가 의도하지 않은 청자의 임의강조 인식효과' 라고나 할까.
어쩌다 가끔 나는 조금의 기억조차 나지 않는 내가 했던 말을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네가 그 때 그런 말을 했었다며 다시 듣는 경우가 있는 걸 보면 나만 임의강조 인식효과를 경험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. 아, 이건 남의 가슴에 못박는 말을 해놓고 나는 모르는 경우이려나. 흠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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